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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박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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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선을 넘어 호남의 희망으로 부활한 박주선(朴柱宣)

작성일09-10-21 17:49 조회4,363회 댓글0건

본문

제3부

사선을 넘어 호남의 희망으로

부활한 박주선(朴柱宣)

‘박주선 살리기’ 나선

화순, 보성인들의 눈물겨운 국회의원 추대운동

16대 국회의원4.13총선 무소속 당선 신화 -

‘37일간의 감동 드라마’

‘중진급 초선의원’ 박주선 ‘차세대 지도자’로 급부상!

낙후지역 화순과 보성을 깜짝놀랄 명품 고장으로 만들어낸 박주선

박주선의 약속, 주민의 흐르는 눈물 온몸으로 닦아내다

‘또 다른 신화’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박주선의 힘’

‘박주선 살리기’ 나선

화순, 보성인들의 눈물겨운

국회의원 추대운동

박주선은 자신 앞에 다가온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하늘이 자신에게 더 큰 일을 하도록 계시(啓示)한 것으로 깨닫고 이 시련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러한 박주선의 기막힌 운명에 자기를 낳아 주고 키워주며 기대를 걸어온 전남 화순, 보성 고향 사람들은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바로 ‘박주선 살리기’에 너도 나도 나선 것이다. 20여 명의 전남도의원, 화순군·보성군 의회 의원들과 민주당 당직자들이 집단 탈당을 결행하고 3만 여 명의 지역 주민들이 서명하여 ‘박주선 국회의원 추대운동’에 나섰다. 참으로 눈물겨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주선은 “내가 고향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면 무엇보다도 내가 모셨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한사코 출마권고를 뿌리쳤었다. 자신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명예가 무참히 짓밟힌 상황에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국정안정을 먼저 걱정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박주선의 순수함과 충성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생각이 짧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선에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 반드시 대통령 곁으로 다시 보내고 말겠다”는 고향주민들의 강력한 의지와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이미 박주선 개인의 명예회복 차원을 넘어 15만 화순 보성 고향 사람들의 명예회복은 물론, 더 나아가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의 명예까지도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박주선은 이것이 바로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라는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어린 시절 두 번의 사건은 바로 ‘하늘의 뜻’을 생각하게 했다. 5세 때 냇물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마침 지나던 동네 분이 건져주어 살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관내 지서에 순시 가던 경찰서장 차에 치어 죽은 것으로 소문이 돌아 외가에서 관과 수의를 가져왔다. 그러나 박주선은 며칠 후에 극적으로 깨어났다. 이 사건은 큰 인물에게 다가오는 시련이었고 큰 일을 시키려는 하늘의 뜻이라고 여겼다.

박주선은 지역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반드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다시 대통령 곁으로 돌아가 못다한 대통령의 개혁 완수에 신명을 다 바쳐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 속에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고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 속에서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 혈혈단신 무소속 출마를 결심했다.

16대 국회의원 4.13총선 무소속 당선 신화 -

‘37일간의 감동 드라마’

그는 마침내 2000년 3월 7일 민주화의 성지(聖地) 광주(光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화순, 보성에 무소속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그의 선언은 즉각 정치권과 국민의 정부에 파문을 일으켰다. 대통령 법무비서관 출신이, 그것도 옷사건의 광풍에 휘말려 구속까지 당했던 사람이 김대통령의 아성이요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심장부에서의 무소속 출마 선언은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국내 언론은 물론 미국, 영국, 일본 정부와 세계의 유력 언론들도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였고 주한 영국 부대사는 보성 현지까지 내려와 직접 면담할 정도였다.

특히 민주당에 난리가 났다. ‘당신이 모시던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당에 맞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김대통령에 대한 배신행위다’. ‘장관 자리를 줄테니 출마를 포기하라’는 제의까지 하며 선거기간 내내 협박과 회유와 방해가 가해졌다. 비서실장 등 권력 최고 실세들이 총동원됐다. 그러나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믿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박주선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이었기에 자신의 출마를 막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국회의원의 당선은 박주선 뿐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의 명예회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 박주선은 한국정치사의 새로운 신화에 도전했다. 선거일까지는 37일 밖에 남지 않았다. 선거전문가나 정치권은 물론 언론에서도 그의 당선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정치경험도 선거경험도 전무하고 조직도 돈도 없는 박주선이였지만 승리를 확신했다. 박주선은 바로 자신의 결백과 고향을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박주선의 국회의원 출마 선언은 이미 또 다른 감동의 물결을 예고하고 있었다. 선거가 본격 시작되자 전국 각지에서 박주선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화순·보성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에서는 직장에 휴가원을 내고 며칠씩 내려와 자원봉사로 참여한 인원만도 2천여 명에 이르고, 대구 춘천 부산 대전 울산 인천 전주 등 타지에서 박주선을 돕기 위해 몰려들었다. 심지어는 미국의 뉴욕, 로스앤젤레스, 캐나다의 뱅쿠버, 일본 도쿄 오사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에서도 날아 왔다. 뿐만 아니라 광주와 해남 완도 진도 고흥 담양 나주 여수 등 보성 화순의 인근지역 주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선거캠프를 찾았다.

날마다 김밥 말고 김치 담아 온 해남 아줌마들, 씨암탉과 계란 두루미를 들고 오신 벌교 할머님, 특히 엄청난 생선회를 가져와 힘내라며 싸 주시던 장화 신은 고흥 아주머니들,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지켜볼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었다. 인간 박주선의 인간성과 또 다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2000년 4월 13일. 37일간의 감동의 물결은 ‘무소속 후보 박주선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한국정치사의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심장부에서 동교동계 공천을 받은 실세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H씨를 1만 8천 여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것이다.

전 언론이 놀라고 민주당이 경악했다. 지지자들은 환호하고 고향은 함성을 보냈다. 호남에 새로운 희망이 등장한 것이다. 어떤 기자는 호남에서 100년에 한 명 나타날까 말까하는 큰 인물이 탄생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없는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던 것이다. 그는 혼자 힘으로 일어섰다. “박 비서관은 나와 역사를 함께 쓸 사람”(김대중 대통령). 그렇다. 그는 김 대통령과 함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국회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이는 바로 ‘하늘의 뜻’ 그것이었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선거현장을 누비고 또 전화로 편지로 박주선 지지를 호소하는 상황을 두고 박주선의 평소의 인간됨과 장래의 정치적 성취에 대해 격찬과 함께 큰 기대가 회자되곤 하였다.

‘중진급 초선의원’ 박주선

‘차세대 지도자’로 급부상!

압도적으로 당선된 그는 선거공약대로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 완수를 돕기 위해 즉시 민주당에 입당했다. 2000년 5월 30일. 국회의원 박주선은 제16대 국회의 개원과 함께 ‘하늘이 그에게 내린 역사’를 쓰기 위해 정치인으로서 첫 걸음마를 시작했다. 국회에 입성한 박주선 의원의 첫 일성은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큰 정치인이 되겠습니다”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토담집에서 태어난 국회의원 박주선의 ‘애원’이요 ‘비원’이 아닐 수 없는 각오였다.

국회의사당을 향하는 그는 보이지 않는 눈물은 남모르게 훔쳐내며 “내가 어떻게 해야 이 크나 큰 은혜를 갚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수십 번 되물으면서 그는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고 한다. “나는 국민 앞에, 또 나를 지키고 키워준 고향 분들 앞에, 그리고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정치인이 되겠다. 대통합의 큰 정치를 펼치겠다”고.

그는 16대 국회가 개원되자마자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국회 대정부질의에 나서서 국가의 근본적인 난맥상의 원인을 추상같이 질타해 정치권과 언론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역감정이 해소되어야 나라의 미래와 통일의 희망이 있습니다. …4천 3백만 국민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7천만 겨레의 번영과 통일의 염원을 짓밟아 버리는 무서운 국가파멸의 에이즈균! 바로 지역감정 그것입니다. …두 얼굴을 가진 위정자들이 끝없는 권력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지역파당 정치를 제물로 삼으면서 지역감정이라는 악마의 주술을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끝내야 됩니다. 국민 대통합 없이는 나라의 미래와 진정한 민족 화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

박주선 의원의 포효에 273명의 전 국회의원들은 그야말로 숙연했다. 박주선의원은 이어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대통령 직속의 ‘지역화합 및 균형발전위원회’설치와 ‘지역감정해소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 국정제안은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 대통령 직속의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출발한 국회의원 박주선은 4년 동안 신들린 듯이 의정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예산결산특위 위원으로서의 재정 금융 기업 분야의 개혁입법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으로서 국민의 여망인 정치개혁입법의 산파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국회 보훈특별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아 국가 보훈정책의 일대 쇄신을 위한 입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시민단체인 경실련 선정 최우수 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민주당내에서는 초선임에도 제1정책조정위원장, 기획조정위원장, 사무총장 직무대행, 전당대회 준비위원장, 당대표 정무특보 등 핵심 고위당직을 두루 거치면서 정책개발 및 조정능력과 조직운용 능력을 키우면서 일약 중진급 의원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박주선 의원에게 ‘중진급 초선의원’이라는 애칭을 붙여줌으로써 신조어를 탄생케 한 주역이기도 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나 김중권 전 대표도 “박주선 의원은 탁원한 능력을 지닌 민주당의 보배요 차세대 지도자감”이라고 공통적으로 극찬해 왔다. 특히 언론에서는 박주선 의원을 김대중 이후를 이어갈 ‘호남의 차세대 주자’로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호방한 성품과 친화력, 따뜻한 인간미, 강인한 추진력과 탁월한 협상 조정능력, 무엇보다도 국정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실력을 겸비한 몇 명 안되는 ‘준비된 정치 지도자’라는 것이 기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그는 분명 ‘하늘이 내린 계시’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운명속에 감춰진 대의(大義)가 움트고 그를 담글질하는 단장의 시련이 함께 할 예시(豫示)가 있었던 것이다.

낙후지역 화순과 보성을 깜짝놀랄 명품 고장으로 만들어낸 박주선

박주선의 약속, 주민의 흐르는 눈물

온몸으로 닦아내다

박주선은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다짐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낙후된 지역구 발전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깜짝놀랄 역량을 발휘하며 헌신하였다. 2000년 박주선이 국회의원 당선 당시 지역구 예산이 화순군이 1,000여억원, 보성군은 1,200여억원이었다. 그런데 박주선이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한 4년 후인 2004년 화순군과 보성군의 예산은 각각 2,000억원 및 2,200억원으로 2배나 껑충 뛰었다. 엄청난 변화였다. 정부예산의 확보가 쉽지않은 일임은 누구나 안다. 이는 박주선이 각 행정부처의 두터운 인맥을 활용하고 그들도 박주선의 정치적 발전가능성을 잘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결과였다. 당시 하승완 보성군수는 “고향토산품을 싸들고 예산확보 활동을 하러 각 부처를 방문해도 예산담당자들을 쉽게 만날 수도 없었는데, 이제는 박주선 의원이 계시니까 서울 출장갈 일이 없어 출장비 등의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화순읍은 전국 최초로 군 단위에 도시가스가 공급된 지역이다. 광주광역시에 인접한 화순군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건설하여 인구유치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파트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것이 화순 주민들의 수년에 걸친 숙원사업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초기공급 시설망 설치비용에 비해 적정수요가 미흡하여 도시가스 공급자가 손해를 보기 때문에 어떠한 사업자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러한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박주선은 산업자원부 장관, 한국가스공사 사장, 해양도시가스 사장 등을 만나 화순읍의 발전가능성으로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하여, 산업자원부의 예산지원, 한국가스공사 및 해양도시가스 등의 비용분담 등을 이끌어냄으로써 도시가스공급이 이루어지게 되어 화순군 발전의 터전을 닦아 지금도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2000년에는 목포-보성간 철도건설 예산을 유치하여 전남권의 2대 발전축인 광양-목포간 철도건설사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어 전남지역의 동서간 물류유통은 물론 관광문화발전의 큰 견인차가 될 것이다. 특히 동 철도건설사업은 약 12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이나 투자대비 생산성이 적어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야당 의원 뿐만아니라 정부에서도 반대했지만 박주선 의원의 집요한 설득과 밀어붙이기로 가능했던 일로 당시에 박주선의 힘과 추진력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동안 지역발전이 뒤처져 취약계층이 많은 지역구 실정을 감안하여 국회의원 임기 내내 지역구내 사회복지법인을 자주 방문하여 위로하는 한편, 박주선을 사랑하는 전국 도시지역의 여유있는 독지가들로 하여금 불우이웃돕기, 장애인시설보조, 문화사업증진 등을 위해 지역내 불우이웃시설 등에 현금 8,000여만원을 지원하도록 하여 박주선의 인맥이 전국 도처에 퍼져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화순군의 경우 당시 전남대학교가 자체예산으로 건설하고 있던 화순전남대병원이 정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없어 어려움에 처하자 교육인적자원부와 기획예산처로 하여금 적극 지원하도록 하여 오늘날 국내 5대 병원으로 탄생시킨 주역이였다. 뿐만아니라 전라남도생물산업연구센터를 유치하여 풍부한 전남의 생물자원을 기반으로 21세기 첨단산업인 생물산업을 육성 발전시키는 한편, GMP(우수의약품제조 및 품질관리 조건)를 갖추어 인근 전남대병원과 암센터와 연계하여 우수의약품제조 인프라와 생물산업 연구개발 관련 지식기반 정보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외에도 화순읍 외곽순환도로, 노인전문요양병원, 화순탄광지역의 국가개발촉진지구 개발사업 지정, 화순소도읍육성사업지구 지정, 화순-보성간 차선도로건설 예산 우선투입, 화순 너릿재 복수터널(광주-화순간 터널 신설을 포함한 국도 22호선 건설 사업), 화순-앵남간 국가지원 지방도로 승격·확포장 등과 각 면 취약지역 교량건설, 역내 각급학교 강당·체육관 신개축과 장학금지원 사업, 향교, 사찰 등 문화재복원 지원, 노인들을 위한 화순이양 공중목욕탕 개보수 등의 사업들이 박주선의 노력으로 차질없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금도 화순군민들은 박주선의 이러한 노력과 열정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

보성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의 세계적인 보성녹차의 명성을 갖게 된 것은 박주선 의원이 심혈을 기울였던 보성녹차클러스터 기반조성을 위한 보성녹차 특성화 사업 선정 덕분이었다. 보성읍 도로 확포장, 보성-율포간도로 확포장, 벌교문화예술전당사업, 보성교회 기독교 사회복지관, 각급 학교 강당·체육관 신개축과 장학금지원, 보성향교 충효관과 문화사업지원 등의 사업들이 박주선의 국회의원 임기중에 유치 진행되었다.

이러한 많은 지역발전사업들의 정부예산확보가 가능했던 것은 박주선이 특유의 친화력과 흡인력, 겸손과 예의, 의리와 정으로 수많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 근무로 인하여 형성된 행정부내의 인맥은 대단하여 위와 같은 지역발전사업을 유치, 지원에 있어 여타 정치인들에 비해 돋보이는 실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소위 박주선에게 민원을 전달하면 “즉석에서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한다”라는 세평을 듣기도 했다.

박주선의 지역챙기기는 임기내내 보여준 정치행보에서도 돋보인다. 국회의원 임기 4년중 국회의원 후원회를 2002년 3월에 단 1회만 개최하였음에도 동 년도에 박주선은 국회의원 총 273명중 후원금 모금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여 많은 정치인들이 박주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와 성원이 그토록 크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는 뉴스가 여의도 정가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더욱이 박주선은 당시 후원회 개최로 화순, 보성군민 들이 기부한 후원금 2억여원을 전액 반환하면서, “나는 고향에서는 마음의 후원을 받되, 금전적 후원은 받지 않겠다”고 하여 지역구민들이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또 다른 신화’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박주선의 힘’

2002년 12월, 16대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초거대 야당을 이끄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소수 집권여당인 민주당 후보와의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나 뭘 보아도 희망을 찾기란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바로 민주당 후보 국민경선 드라마였다. 각본에 없는 드라마가 연출된 것이다.

노무현 후보의 치밀한 각본은 ‘광주혁명’을 통해 민주당 후보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다. 월드컵 대통령 정몽준의 벽이 도사리고 있었다. 범여권세력들은 노무현파, 정몽준파, 두 명의 후보단일화파 등으로 나뉘어 적전분열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야말로 범여권세력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범여권 민주세력의 후보단일화 압력에 노무현과 정몽준의 극적인 단일화가 이루어져 대역전의 기회를 맞았다. 그야말로 민주평화 개혁세력의 정권재창출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현장이었다. 그러나 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지지철회’ 선언으로 또 한 번 위기를 맞았으나 역(逆)으로 위기의식에 처한 범민주 세력의 대결집을 가져와 노무현의 극적인 승리를 쟁취하여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이 역사적인 드라마의 한 복판에도 역시 박주선 의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공명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공정한 선거관리와 탁월한 조정 능력을 발휘해 경선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노무현 후보 확정 후에는 선거대책위 제1정책조정위원장으로서 각종 정책공약 개발과 홍보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특히 TV토론은 물론 각종 언론사와 시민사회단체의 정책토론에 단골로 출연하여 명쾌한 논리와 탁월한 화술로 뛰어난 토론 역량을 발휘해 민주당은 물론 정치권의 새로운 논객으로 급부상해 명성을 날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몽준의 급격한 부상으로 민주당은 후보단일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박주선 의원은 고뇌에 찬 시간이었다. 그러나 여론의 압력은 후보단일화였다. 박주선은 노무현 후보 제1정조위원장으로서 민주당 중심의 후보단일화를 이뤄내기 위해 대학특강, 지역구 활동 등을 통하여 노무현 후보로의 단일화를 강력히 주장했었다. 결국 민주당 후보로 후보단일화를 이뤄냈다. 박주선의 드러나지 않은 활약이었다.

그리고 2002년 12월 19일 밤. 노무현 당선! 역사적인 민주개혁세력의 정권 재창출의 순간이었다. 모두가 함성과 감격의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민주당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바보 노무현’이 ‘대통령 노무현’으로 새롭게 태어남을 모두가 아낌없이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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