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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박주선
박주선의 아름다운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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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호남과 민주당의 순교자 박주선

작성일09-10-21 17:50 조회4,247회 댓글0건

본문

제4부

호남과 민주당의 순교자 박주선

-박주선 죽이기와 호남 분할지배 음모의 서곡-

민주당 분당(分黨)의 거대한 음모(陰謀)

박주선을 향한 회유와 압력 “명분없는 분열주의 거부”

제2의 시련기 맞은 ‘호남의 아들’ -

노무현 정권과 ‘박주선 죽이기’ 의혹

‘진실 가둔’ 두 번째, 세 번째 투옥…

‘사선을 넘어’ 꺾이지 않은 박주선의 기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눈물의 옥중출마 4.15 총선

민주당 분당(分黨)의 거대한 음모(陰謀) -

박주선을 향한 회유와 압력

“명분없는 분열주의 거부”

“국민 여러분! 저의 당선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승리입니다!”

감격의 축제도 잠시, 파열음이 들렸다. 노무현 당선자의 당선 축하 메시지에는 민주당의 운명을 가르는 무서운 암운이 감돌고 있었다. 곧이어 소위 친노(親盧) 네티즌의 ‘친위쿠데타’가 시작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공신(功臣)과 역적(逆賊)의 살생부(殺生簿) 명단이 등장했다. 거대한 음모가 시작된 것이다. 박주선 의원에게도 ‘역적 아닌 역적’의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후보단일화에 앞장섰다는 것이 이유였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로의 단일화에 주력했고,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로 노후보가 당선되었고, 특히 지역구인 화순 보성에서 ‘대선 득표율 전국 2위’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이끌어낸 박주선이였다. 치떨리는 분노와 배신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당원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치욕스런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 뒤 민주당은 이른바 386그룹 및 개혁신당그룹, 그리고 소위 ‘탈레반’을 중심으로 한 노무현 지지파와 민주당 당권파를 중심으로 끝없는 당권투쟁 과정에서 갈등과 분열 끝에 분당의 운명을 맞고 말았다. 헌정사상 초유의 여당 분열이 이루어 진 것이다.

박주선 의원은 한없는 고뇌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정치권력의 무상과 비애를 처절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분당만은 막아야 된다고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설득하고 중재도 했다.

그러나 끝내 신당파들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소위 ‘노무현당’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강행했다.

분당 과정에서 국회의원 쟁탈전이 치열했다. 박주선 의원에 대한 신당세력들의 집요한 회유와 압력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는 초연했다. 명분없는 분열주의의 망국적인 정치행태에 배신과 분노를 토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라스테스의 침대’를 동원한 ‘신당 음모’를 강력히 규탄하며 “신당을 결행하기 위한 일련의 표적수사와 정치보복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로크라스테스의 침대’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라스테스라는 도적이 나그네들을 자기 소굴로 끌고 가 침대에 눕힌 뒤 침대보다 크면 머리와 다리를 잘라 죽이고 작으면 늘려 죽였다는 신화로 ‘자신만의 절대적 기준을 정해 놓고 강요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데 인용된다.

박주선 의원은 민주당 사수의 전면에 나섰다. 그는 민주당 분당과 자신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가 계속되는 와중에서도 사무총장 직무대행을 맡아 풍전등화의 민주당을 지켜 갔다. 그리고는 2003년 11월28일에는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장을 맡아 전당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내 곤두박질치는 민주당의 지지도를 1위로 끌어 올린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2003년 12월 4일자 중앙일보 여론조사 민주당 19% 한나라당 18.3% 열린우리당 9.8%). 그 후 그는 민주당의 모든 당직에서 물러나 백의종군의 길을 걸었다.

또한 박주선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햇볕정책에도 남다른 애정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2003년 6월 김대중 정부 정책의 계승자여야 할 노무현 정부가 대북 햇볕정책에 대해 무시로 일관하던 때에 당시 제1정조위원장이던 박주선 의원은 6.15 3주년 행사를 기획 제안해 경의선 연결지점 방문행사를 갖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박주선은 표적수사 당시 검찰의 출국 금지조치를 뚫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그해 6월 30일 분단 58년 만에 이뤄진 역사적인 ‘개성공단 착공식’에 참석해 북한 아태평화위 이종혁 부위원장 등과 회동해 남북현안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개성공단 착공식은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자리였다”고 강조하고 “흔들렸던 햇볕정책이 복원되어 새로운 출발이 되길 바란다”며 ‘한국판 유럽경제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남북경제공동체(Korean Economic Community)’의 필요성까지 주창하는 선각자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자신의 탯줄 정권인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무력화시켜 버린 노무현 정권의 거대한 음모에 의연히 맞섰던 것이다. 어떠한 불의와 음모에도 굴하지 않는 박주선의 결연한 의지는 또 다른 순교자로서의 시련을 잉태하고 있었다.

제2의 시련기 맞은 ‘호남의 아들’-

노무현 정권과 ‘박주선 죽이기’ 의혹

김대중 정부 시절 ‘실체없는 옷로비 사건’의 유탄에 희생양이 되었던 개혁사정의 집행자 박주선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소위 ‘정치보복 표적수사’라는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제2의 시련기를 맞았다.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에 박주선 의원이 연루됐다는 검찰발 언론보도가 ‘박주선 죽이기’의 첫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그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에게 씌워지는 음모의 덫이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이미 검찰수사가 끝나 마무리되었던 나라종금 사건이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재수사를 하게 된 배경, ▶특히 관련 혐의도 증거도 없는 박주선 의원을 억지 구속하기 위해 나라종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선후배, 친구들과 심지어 김대중 정부시절 임명된 국영기업체 사장들까지 80여 명의 주변 인사들에게 ‘박주선에게 돈 얼마나 갖다 줬냐’며 무자비한 계좌 추적과 조사를 실시한 점, ▶그리고 담당 수사 검사가 “이 사건은 기소할 수 없다. 기소해도 무죄다. 위에서 기소하라 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다. 제발 윗선에 이야기 좀 잘해 달라”고 말한 점,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담당 수사검사가 전격 교체되어 버린 점, ▶사건의 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대검 중수부장이 “무죄가 되더라도 반드시 구속 기소한다”며 국회 체포동의안을 제출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한 점,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고 시민단체는 부패정치인 체포조를 구성해 국회를 누비고 다닌 점, ▶특히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박주선을 비롯한 7명의 국회의원들에 대한 체포 가부 표결시에 검찰이 다른 6명의 의원들에 대하여는 해당의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를 제시했으면서도, 대검찰청 기자실을 찾아 그토록 억울함을 호소하며 검찰수사의 잘못을 조목조목 비판했던 박주선 의원에 대해서만 유독 검찰이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한 점 등 여러 정황에 미루어 나라종금 사건의 재수사는 박주선에 대한 명백한 ‘정치보복적 표적수사’라는 결론에 도달한 박주선 의원은 치떨리는 분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역구였던 화순 보성지역 주민들도 ‘박주선 표적수사 정치탄압 중단하라’며 성명을 발표하며 들고 있어났다.

결국 이듬해인 2004년 1월 10일 구속영장조차도 법원에 의해 기각되더니, 같은해 3월 26일 1심 법원 무죄 선고, 11월 2일 2심 고등법원 무죄선고로 막을 내렸다. 사필귀정이었다. 그러나 1년 6개월 여간의 나라종금 사건 법정투쟁은 청렴 강직의 상징 박주선의 명예와 자존심을 송두리째 짓밟아 버렸다. 그러나 상고마저 포기한 검찰은 지금도 아무런 말이 없다. 왜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일까?

‘진실 가둔’ 두 번째, 세 번째 투옥…

‘사선을 넘어’ 꺾이지 않은

박주선의 기개

나라종금 사건과 관련해서는 박주선 의원에 대해 무죄 판결이 명백해 구속영장 발부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검찰은 슬그머니 현대건설 관련 뇌물수수 혐의를 새로 추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검찰의 기습이었다. 당시(2004. 1.5일) 대검 중수부장이 변호인을 통해 ‘박주선 의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통보까지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검찰방침을 뒤집고 현대건설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면서 전혀 상관이 없는 박주선 의원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두 번째 박주선 죽이기’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대북송금 특검 수사로 악화된 여론 광풍을 의식한 법원은 실체적 진실에 접근조차 못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말았다. 2004년 1월 10일 결국 박주선은 두 번째 구속이라는 비운을 맞아야 했다.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의 국회 정무위원회 증인 채택을 막아 달라는 청탁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그러나 검찰의 주장은 오류와 허점투성이였다. 국회 속기록을 뒤져봐도 박주선 의원이 소속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정몽헌 회장 증인 채택문제를 논의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국회 재경위에서 정회장 증인채택문제가 첨예하게 대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이 상임위에 소속된 현 집권여당의 실세들이 정회장의 증인채택을 결사 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미스터리는 수사과정에서 실제로 현대로부터 골프접대를 받고, 명품 버버리 코트를 선물 받고, 술 향응 접대를 받은 것으로 밝혀진 의원들은 모두 그대로 놔두고 유독 초선인 박주선 의원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운 검찰의 처사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인이 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박주선 의원과 평소 친한 사이였다. 또 후원금을 가져다준 현대건설 임모 부사장은 박의원의 고향 선배였다. 어느 날 의원회관에 찾아온 고향 선배는 후원금이라며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회사 자금이 어렵다던데 무슨 후원금을 가져 오셨냐”며 사양하다 마지못해 보좌관에게 건넸고, 보좌관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정식으로 선관위에 신고하고 현대건설에 후원금 수령 영수증까지 발급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3년 후 이 후원금이 뇌물로 둔갑해 ‘박주선 죽이기’ 최후의 만찬이 시작 된 것이다. 정치자금법이 정한 법정한도내의 후원금을 받아 선관위에 신고하고 영수증까지 발급하며 법을 잘 지켜도 ‘뇌물’에 해당된다는 검찰 주장이었다. 이런 법 논리라면 정치자금법도 필요 없고 모든 정치인은 범죄자라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박주선은 돈에 관한 한 정확하고 깨끗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는 16대 국회의원 4년 동안 후원회를 2002년 3월에 딱 한번 열었다(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해마다 후원회를 열고 정치활동자금을 거둔다). 후원자들 3천여 명이 몰려와 정치권이 깜짝 놀랐다. 그런데 박의원은 화순 보성 지역구 주민들이 가져온 후원금 2억 2천 여 만원을 전액 돌려주었다. 정치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언론들도 대서특필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저를 국회의원에 당선시켜 준 은혜도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일인데 후원금까지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마음만 받겠다”고 모두 되돌려 준 그런 박주선이였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돈 몇 푼 탐나서 뇌물이나 받아 챙기는 그런 파렴치한 인간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있었다. 2000년 4.13 총선 기간 중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박주선을 돕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격려차 화순 보성에 내려와 선거비용에 보태 쓰라며 격려금 봉투를 주면 “머나먼 시골까지 직접 찾아온 것만도 감사하고 미안한데 어떻게 돈까지 받느냐”며 호의를 모두 거절했다. 그러자 ‘남의 성의를 무시하고 깨끗한 척만 해가지고 무슨 당선이 되겠느냐’ ‘박주선이가 아직도 공직자 티를 못 벗었다’ ‘박주선이는 재벌들한테 수억씩 받아서 수십만 원 정도는 받지도 않는다’ 등의 괴소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2004년 3월 26일. 마녀사냥의 여론광풍을 등에 업은 검찰의 ‘기상천외한 맞춤형 기소 논리’는 1심 법원도 무사통과해 재판부는 징역 2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선고하고 말았다. 일말 기대했던 사법정의가 가차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에 좌절할 박주선이 아니었다. “내 육신은 감옥에 가둘 수 있어도 진실은 가둘 수 없다”는 신념으로 고등법원에 즉각 항소했다. 당시 17대 총선에 옥중출마했던 박주선은 “주거도 일정하고 도망갈 수도 없음이 명백한 이상 정상적인 선거운동을 위해 보석 석방해 달라”고 그토록 탄원했지만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기간 동안 보석 석방을 거부했던 2심 재판부는 17대 총선이 끝나자 뜻밖에 보석으로 박주선을 석방하였다. 두 번째 구속된 지 210여 일이 지날 무렵이었다. 왜 선거가 끝나고서야 보석 석방을 했을까? 삼척동자도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신이 극도로 지쳐버린 박주선은 석방 즉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가 막힐 일이 일어났다. 심장 관상동맥 4군데가 막혀 있으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동안 자각증세도 전혀 없었다. 발견 못했으면 사망했을 거라는 것이었다. 의사의 말로는 화병으로 생긴 병이라는 것이다. 심장 대수술을 받았다.

하늘이 그를 또 살렸다. 세 번째 살렸다. 5살 때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그를 동네사람이 건져내 살렸고, 초등학교 5학년 때 경찰서장 차에 치어 병원에서 며칠 만에 기적같이 살아났고, 억울한 누명쓰고 화병으로 심장혈관이 막혀버린 것도 모르고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을 의사 친구가 살렸다.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싶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박주선은 검찰이 억지로 씌운 혐의사실에 대해 진실이 밝혀질 수만 있다면 가슴이라도 열겠다고 결백을 주장했는데 정말로 가슴을 여는 대수술을 받은 것이다. ‘3’이라는 숫자는 도대체 박주선에게 어떤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일까?

심장 대수술 후 요양 치료하면서도 재판은 계속됐다.

2심 고등법원 재판부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재판과정에서 1심과는 달리 증인 진술이 번복되고 검찰 주장이 뒤집히며 검찰은 일방적 수세에 몰렸다. 변호인단은 물론 심리과정을 취재했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박주선의 무죄판결을 확신했다.

2004년 11월 2일, 2심 재판부의 선고가 있던 날. 법정을 가득 메운 지지자들은 법정 복도까지 꽉 들어찼다. 모두들 무죄판결을 확신한 듯 표정들이 밝았다. 그러나 왠지 법정에 들어선 재판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피고인 박주선 항소 기각. 보석 취소, 법정구속’.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또 한번 하늘이 무너졌다. 법조계에서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판결이라는 것이었다. 검찰에 의해 두 번이나 억지 구속되고 이제는 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에 의해 법정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흉악범도, 파렴치 잡범도, 국가전복을 기도하는 빨갱이도 아닌 현역 국회의원을, 심장 수술한 지 두 달밖에 안된 환자를, 그것도 자신들이 풀어주고 또다시 잡아 가뒀다. 왜 그랬을까? “다른 목적이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대한민국 법정에서 일어났다”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도저히 인간들이 내리는 형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처참한 시련이었다. 박주선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 하늘이 나를 세 차례나 구속시켜 파란만장한 인생역경을 겪게 해서 희대의 풍운아로 만들려는 뜻인가 보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랬다. 하늘이 내린 시련이었다. 하늘은 박주선을 국가와 민족의 제단 앞에 더 큰 일꾼으로 쓰기 위해 ‘단장의 아픔’까지도 감내하도록 그를 철저히 담금질시켰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눈물의 옥중출마 4.15 총선

동토의 땅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그러나 박주선을 둘러싼 감방의 벽은 아직도 엄동설한이었다. 2004년 4월 15일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민주당 간사였던 그는 선거구 조정협상에서 온갖 비판을 무릅쓰면서 호남지역 기존 선거구 유지 합의를 이끌어 냈었다.

그러나 그가 현대비자금 사건이라는 ‘음모의 덫’에 걸려 구속되어 있는 동안, 재협상 과정에서 인구 하한선 미달에 걸린 전남 나주와 고흥 선거구가 다른 지역에 통폐합 대상이 되자, 박주선 의원이 구속중인 틈을 타고 멀쩡하던 화순 보성 지역구를 둘로 쪼개 화순은 나주에, 보성은 고흥으로 강제합병시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루고 있는 동료 의원의 불행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정치적 비애를 또 한 번 느낀 박주선 의원은 분노가 폭발했다. 화순·보성 지역구 당원들의 집단탈당이 계속됐고 지지자들과 주민들의 민주당 규탄대회, 그리고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옥중출마하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2004년 3월 19일 그는 민주당을 전격 탈당하고 새로운 선거구인 보성·고흥에 무소속 옥중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기득권 안주와 정체성 상실로 좌초돼 극히 위험스런 상황에 처해있다”며 “17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합리적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위한 작은 불씨가 되겠다”고 포효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눈물겨운 옥중 선거가 시작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들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지자들의 선봉에서 낯선 선거판을 누비기 시작했다. 남편의 억울함을, 아버지의 결백을 호소하며 무르팍이 깨지고 팔꿈치가 닳도록 ‘박주선’을 외쳤다. 박주선 의원이 감옥에서 아내에게 보낸 한 통의 애끓는 옥중편지가 언론들에 보도되자 하늘이 울고 국민도 울었다. (133쪽 옥중편지 전문)

기록의 사나이 박주선 의원은 17대 총선 기간 중 선거사상 두 가지의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우리나라 선거사상 최초로 ‘옥중 TV 방송연설’이었다. 박주선 후보 선거기획팀의 추적 끝에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에 옥중 출마한 송요찬 후보의 ‘옥중 라디오 방송연설’ 기록을 찾아내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옥중 방송연설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아냈다. 법무부의 촬영 협조로 4월 12일 서울구치소에서 TV 방송연설 녹화를 마치고 13일과 14일 역사적인 첫 ‘옥중 TV 방송연설’이 유권자들 안방에 전달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 옥중연설에서 박주선은 “억울하게 정치탄압을 받아 구속되어 선거운동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무례를 용서해 달라”며 “만일 저에게 죄가 있다면 어떻게 철면피처럼 출마를 할 수 있겠으며 처자식을 앞세워 내 남편, 내 아버지는 죄가 없다고 거짓말로 선거운동을 시키겠습니까? 만일 제가 구속되어 있는 사건으로 유죄를 받는다면 유권자 여러분은 저와 저희 가족에게 돌팔매를 던져 주십시오”라고 호소하여 TV를 시청하던 사람들은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수많은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렸었다.

또 하나는 선거사상 처음으로 후보자의 인터넷 TV 방송국인 ‘JS TV-박주선 TV 방송국’을 개국해 뉴미디어 선거 운동의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져 탁월한 선거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어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그 자원봉사자들은 ‘박주선을 사랑하는 모임’인 ‘SUN 클럽’을 결성해 활동하며 지금도 박주선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눈물겨운 ‘옥중 선거 혁명’은 ‘대통령 탄핵 역풍’속에서 박주선이 근소한 표차로 분패함으로써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옥중의 박주선은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는 이겼다’는 언론의 평가를 받았다.

그랬다. 분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아내에게 바치는 눈물로 쓴 옥중편지’

(4.15총선 옥중 출마 때 아내에게 보냈던 박주선

의원의 옥중편지 전문)

사랑하고 가엾은 당신에게!

“더 이상 울지 마세요”라고 울먹이던 당신의 따뜻한 위로와 자상한 격려를 잘 기억하고 있건만 오늘 아침 나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당할 수가 없소. 오늘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애들 착하게 키우면서 작은 힘이나마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욕심없이 아름답게 살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우리가 결혼한 지 25년이 되는 날입니다. 아마 당신은 감방에 묶여있는 이 못난 남편을 위해 오늘도 정신없이 뛰어다닐 생각에 오늘이 결혼 25주년 날인 줄도 미처 생각을 못하고 있겠지요.

착하기만하고 수줍음과 부끄러움으로 남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는 가정적인 여성, 그리고 늘상 학교선생님으로서 가정일밖에 모른다고 겸손해하던 당신, 그리고 정치만은 정말 싫다며 정치에 입문하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던 당신을 험난한 선거판에 보내 “억울한 남편 살려 달라”고 울부짖게 만든 못난 남편을 많이많이 원망하세요. 당신의 그 곱디고운 입술은 부르트지나 않았는지, 발목은 얼마나 부었는지, 속상해하고 마음 아픈 일이나 당하지 않았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고 피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여보 동희엄마!

남을 다스리고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니 죄짓지 말고 깨끗하고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며 살자고 다짐했던 우리의 삶이 왜 이렇게도 구부러지고 덜커덩거리는지 참으로 알 수 없네요. 정직, 청렴, 강직, 의리를 좌우명으로 삼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는 내가 치사한 정치판속의 가장 더러운 부패덩어리의 누명을 쓰고 있으니, 나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 가족이 겪는 고통은 어떻게 보상하고 이 억울함과 비분을 누가 벗겨주며 실추된 명예는 어디에서 다시 찾아질 것인가 하는 생각에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는구려.

“정치보복을 위해 죄를 만들어 구속했으니 선거전에는 내보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되고 보니 과연 이 땅에 정의는 어디 갔으며 하나님은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지 안타까운 마음 숨길 수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보내주신 추석선물마저 돌려보내 청와대에서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보성·화순군민이 정성스레 보내준 후원금을 마음만 받겠다며 전액 돌려주었고, 국회의원 4년 동안 보성·화순군의 인사나 사업이권과 관련된 구설수 한마디 들은 바 없이 누구보다 깨끗하고 떳떳하게 살아왔던 나를 당신은 보증할 것입니다.

“제발 정치만은 하지 말라”는 애시당초 당신의 눈물어린 하소연을 들었던들, “김대중 대통령을 이을 호남의 차세대 지도자는 박주선”이라는 정보기관들의 조사결과만 없었던들, “열린우리당으로 가자”던 배신분열주의자들의 사악한 유혹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했던들, 또한 “재판에서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라던 조언을 들었던들 오늘의 이런 탄압과 고통은 피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1년 동안 그렇게도 나를 괴롭혔던 조작된 나라종금사건은 하는 수 없이 무죄선고를 하면서도 더더욱 무죄가 확실한 합법적인 후원금 몇 푼을 뇌물로 둔갑시켜 유죄실형선고를 한 법원은 국민의 사법부이길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잠시 가릴 수는 있으나 영원히 지울 수는 없다”는 사필귀정의 신념 속에서 선거만 끝나면 틀림없이 무죄판결이 내려져 석방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심지어 박상천 후보님께서도 “박의원은 억울하게 당한 사람으로서 틀림없이 무죄판결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보!

김대중 대통령께서 나를 국정개혁과 인재등용의 총 지휘탑인 대통령 법무비서관으로 발탁하시고 나를 그토록 신뢰하고 총애하시면서 “박주선은 나와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일, 내가 마녀사냥식 옷사건의 와중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의 역할을 자임했던 일, “억울한 박주선을 살리자”며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간 고향분들의 살신성인의 헌신, “박주선의 16대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보성·화순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인산인해의 물결”, “호남을 지키고 호남을 대표하여 큰 일할 사람은 박주선 밖에 없다”는 언론사 기자들의 애정어린 기대,

이런 모든 것들이 “깨끗하고 지조있는 당신같은 사람은 아수라장 같은 정치판에는 안 어울린다”는 당신의 만류를 내가 뿌리치고 정치판에 들어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한 숙명같은 사연들 아닙니까?

당신은 이번에도 “이제 제발 정치 그만두고 홀로 계신 어머님께 효도하고 애들 뒷바라지하며 소박하게 살자”고 애원했지요. 그때 나는 당신에게 “공인생활을 이렇게 억울하게 그만둘 수는 없다. 그동안 나를 위해 기대하고 성원해 주셨던 분들의 빗발치는 출마권유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는가. 아직도 찢어지게 가난한 고향분들의 어려운 현실과 찢겨진 호남의 자존심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마지막 심장 한 조각 남더라도 부둥켜 안고 무르팍이 깨지고 팔꿈치가 닳아 없어지는 날까지 국민의 흐르는 눈물과 함께 하겠다”는 이유로 출마의 불가피성을 설명했었소. 이 못난 남편의 피를 토하는 호소에 수많은 고뇌와 번민 끝에 불구덩이에서 타 죽어가고 있는 나를 구하기 위해 옷깃을 여미고 마르지 않는 눈물을 남모르게 훔쳐내며 지역구로 내려간 당신! 돌아서 간 당신의 뒷모습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참으로 미안하고 고맙구려.

가엾은 여보!

사람들은 우리 두 사람을 거짓말 못하고 겸손과 예의가 몸에 배인 사람들이라고들 하지요. 우리가 남 못할 짓 한 것 없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 때문에 고흥 보성 군민들에게 보태지도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합시다. 당선에만 눈이 어두워 나에 대한 중상모략의 유언비어도 있을 것이고,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가슴 아픈 선동도 있는 황량한 선거판에서, 감옥에 묶여있는 못난 남편을 대신해 뛰어야 하는 당신의 가련하고 안타까운 처지가 나의 애간장을 끊습니다.

부끄럽고 수줍어서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할 순진한 당신이 선거판의 폭풍과 격랑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큽니다만 당신의 꾸밈없는 순수함과 진솔함으로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 성원과 도움을 청하면 자존심과 정의감이 높고 항상 둥근 가슴과 따듯한 마음을 가지신 내 고향 고흥·보성군민들은 당신의 호소를 이해하고 나를 가련하게 여기시리라 생각합니다. 고흥·보성을 위하고 호남을 살리고 나라의 백년대계를 가꾸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처럼 박주선이를 한번 믿어 주십사하고 간절히 말씀드리세요.

무슨 운명의 조화인지 하늘의 뜻인지 내가 2000년도에는 옷사건으로 구속되어 있다가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무소속 출마를 했을 때 보성·화순군민들이 나의 결백과 무죄를 믿고 압도적인 지지를 주셔서 당선되었고, 이번에는 억울한 정치탄압으로 구속이 되어 또다시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구려. 많은 분들이 “하늘이 큰일을 맡기기 위해서는 큰 시련을 내려 시험한다”고 하면서 아무런 죄없이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 큰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위로의 말씀을 주시곤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고 가엾은 여보!

당신에게 감사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소. 1평 남짓한 감방에서 손발이 묶여져 선거구민에게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긴 나의 안타까운 처지를 잘 말씀드리면서 당신이 더 많은 분들에게 더 겸손하면서 더 깍듯한 자세로 도움요청과 함께 용서를 구하세요.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하신 바로 그날 3월 26일, 나는 정치탄압으로 범죄는 무죄선고요 인생의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했으나 사랑하는 당신의 희생과 주위의 여러분들의 눈물겨운 헌신으로 암벽과 빙벽을 뚫고 솟아나는 소나무가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사즉생, 생즉사의 심정으로 후회없는 마무리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합시다.

사랑하는 여보!

마음이 슬프고 몸이 피곤할 때는 나를 원망하면서도 우리를 돕고 있는 주위 분들에게 항상 웃음을 잃지 말고 많은 격려와 감사하는 마음 항상 잊지 마세요.

여보! 늘 당신의 건강 조심하세요.

2004. 3. 31

서울구치소 1평 감방에서

죄는 없으나 못난 남편 박주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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